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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카2호의 예비소집일이었다. 조카2호가 벌써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된 것이다! 마치 새로운 시작이, 뭔가 소생하는 기쁨이 있을 것만 같은 이 기분이 현실에서도, 조카2호의 엄마인 내 동생에게도 실현되길 바래본다.

삶은 잔인하게도 무심하게 흘러간다. 너무 무심해서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깜빡 놓치는 때가 허다하다. 그렇게 나도 무심해질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손톱을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손이 엉망진창이다.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은 등으로 옮겨 쑤시기 시작했다. 동생이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가 보다 하길래 그냥 웃었다. 마음을 조금만 놓아도 눈물이 난다. 마음을 꽉 붙잡고 씩씩하게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려고 한다. 아프다는 말은 내겐 사치다.

1.

온라인 스터디를 시작했다. 매일 음원이나 영상이 존재하는 텍스트를 새도잉해서 녹음하고, 그걸 그룹카페에 올려 인증하는 스터디다. 원래는 처음 생각했던 대로 독해 스터디를 할까 했는데, 살펴보니까 독해스터디는 온라인으로 하면 번역스터디처럼 될 것 같아서 (주관적 문장 강박증이 있는 관계로) 포기했다. 필사스터디도 너무 멋있어 보였는데, 내 중국어는 악필에다가 다들 몇 바닥씩 쓰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아서, 2분 가량의 텍스트를 연습하고 녹음해서 꾸준히 진행하는 새도잉 스터디에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다행히 지금까진 잘 해가고 있다. 10월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겨우 2주차인데, 공부고 일이고 삼 년 가량 쉬고 있다보니까 이게 딴생각이 엄청 드는 것이다. ‘지금이 중국어 붙잡고 있을 때야?’ 라든가, '그게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다고’ 라든가, '이럴 시간이 있냐’ 등등등에다가 가장 큰 걸림돌은 '그냥 자자'랄까. 여튼 오늘도 무사히 미션을 완수하기는 했다. 부디 앞으로도 잘 해나가기를. 도대체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조금만 한가해지면 녹음 준비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동생에게 스터디 관련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나의 이런 쓸데없는 얘기도 동생은 지지하며 들어주고 있다. 입장바꿔 나라면, 난 들어주기 싫을텐데. 난 정말 나밖에 모르는 것 같다.

2.

지난번에 동생 MRI 결과를 확인한 직후, 바로 입원을 해야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부는 출장 중이라, 혹시 조카2호가 엄마아빠 없이 할머니할아버지와 자야만 할 때를 대비해 그동안 갖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티라노사우르스 장난감을 사뒀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동생의 입원이 제부 귀국 후로 미뤄져서 그 장난감의 수여식은 이모인 내 생일에 진행하기로 했었다. 그렇게 결정한 다음 조카에게 '티라노사우르스가 이모 생일에 널 만나러 올 것'이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조카2호가 이모 생일을 학수고대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누군가가 매일같이 내 생일을 기다려준 경험이 없어서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이 내 생일이었다. 지난 9월에 아빠 칠순을 기념해서 제주도에 다녀왔었는데, 그때 내가 벨롱장에서 유리로 만든 샤이닝캐쳐 공예품을 갖고싶어하던 걸 눈여겨본 동생이 나 몰래 사뒀다가 오늘까지 그걸 비밀로 하고선, 아침에야 서프라이즈 선물로 줬다. 너무 갖고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포기했던 거라 진짜 엄청 기뻐서 펄쩍 뛰었는데, 그걸 본 조카2호가 엄청 삐져서는 왜 이모만 선물 주냐고 ㅋㅋㅋ. 그래서 티라노사우르스를 찾아줬더니, 공룡 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주제에 완전 신나서 이모 생일 축하를 거나하게 해줬다. 행복한 생일이었다. 생일이면 늘 민망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그랬었는데, 생일날 행복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동생이 있어서, 그리고 내 생일을 기다려주는 조카가 있어서 행복했다. 이 행복은 나날이 더해갈 것이다. 지금까지 생일따위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내 삶은 이번 생일을 시작으로 행복한 나날로만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같이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깬 조카2호가 “난 우주에서 왔지만 엄마랑 계속 같이 있을 거야"라고 동생에게 말해줬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외과 외래에 다녀왔다. 수술은 어렵다는, 이미 알고 있는 얘기였지만 선생님의 단호한 말투가 되려 안심이 됐다.

동생의 예후가 좋지 않다. 예후가 좋지 않은 아이를 붙잡고 내일을 생각하지 말자고 지금까지는 다 잘 되어가고 있지 않냐고 오늘 하루 내일 하루 그렇게만 생각하자고 다그치며 어떻게든 오늘을 넘겼는데, 내가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삶이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우리에게만 이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도 마음이 차분해지진 않는다. 뭔가 잊은 듯한 불편한 기분, 오늘의 내가 그렇다. 자고 일어나면 또 오늘, 그렇게 무사히 오늘에 오늘을 쌓아가며 부디 오래오래 이 삶을 함께 살아낼 수 있기를. 묵묵히 살아가자, 같이.

마음을 지키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늘 밤산책에 동생이 울었다. 나는 그냥 잠자코 들어주지 못하고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차마 하지 못한 말. 네가 무너지면 우리 모두 무너지는 거야, 부디 마음을 잘 붙들어줘. 네가 살리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야, 부디 우리와 함께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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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제주 우도에서 주워온 조개껍질에 인사를 한다. 내가 이렇게 바다를 좋아했던가 싶을 정도로. 제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깊어진다. 가고싶다. 다 정리하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햇살 좋은데 앉아 꾸벅꾸벅 졸기 좋은 날씨네

#졸려

병실 옆자리 환자가 엉엉 울고 있다. 간병인이 없는지 달래주는 사람도 없다. 달래주는 사람 없어도 곧 그치겠지만, 너무 상심하지는 말았으면. 누구에게나 마음을 지키는 일은 참 어렵다.

동생은 MRI 촬영을 위해 금식하며 무기한 대기중이다.

hongshhartnett:

청춘페스티벌 2016, 김이나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멋진 어른이라니!

(via ineejj)